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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와 PM

디자이너는 왜 PM이 되는가?

by 올잇디 2024. 2. 25.

지금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나는 UX/UI 디자이너도 아니고 PM(Project Manager)도 아니었다. 6년 차가 되는 동안 주로 콘텐츠, 패키지를 다루는 그래픽 디자이너였다. (지금도 그래픽 디자인을 포기할 순 없다) 2011년, 나의 첫 직무는 웹디자이너였고 6살 차이 나는 사수 디자이너가 있었다. 그 사수가 퇴사하며 해준 얘기를 오랫동안 기억한다.

 

"우리는 오퍼레이터가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실무 중에서 작업 시간이 넉넉한 경우는 없다. 당연히 충분히 생각하고 질문할 시간이 없다. 타깃 일까지 시간이 촉박하면 대부분 디자인에서 타협한다. 그런다고 아름답지 않은 작업물을 세상에 내놓을 순 없다.

 

뭔가를 잘하고 싶으면 질문하게 된다

내가 디자인 퀄리티를 타협하지 않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프로젝트 초기부터 목표와 콘셉트를 최대한 빨리 이해하는 것이었다. '생각하고 질문할 시간'을 스스로 확보하고,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업량을 늘려 퀄리티를 높이기 위함이었다. 여기서 퀄리티란 심미성이기도 하지만 프로젝트의 목표, 방향성, 콘셉트, 최종 결과물의 범위 등 기획자가 그려놓은 밑그림에 최대한의 시각적 당위성을 입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기획자의 글을 뜯어본다. 처음에는 디자인 작업에 한정하여 단순하게 고민한다.

 

  • 타깃일 내에 할 수 있을까?
  • 콘셉트가 작업하기 까다롭지는 않나?
  • 기획안 중에 이해 못 한 부분은 없나?

 

어떤 그림이 나올지 대략 예상이 끝나면 고객을 생각하며 더 고민한다.

  • 이 프로젝트의 처음 목표가 뭐였지?
  • 대상의 흥미를 충분히 끌 수 있을까?
  • 이 콘셉트가 이 주제와 정말 잘 맞나?

 

디자인 작업을 시작한 후 고객과 서비스를 연결하기 위해 다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다.

  • 콘텐츠의 흐름이 여기서 끊기지 않나?
  • 익숙한 구조가 아닌데 괜찮을까?
  • 이런 식으로 시각화하는 것이 더 재밌지 않나?

디자인 결과물의 대부분은 실제 고객과 바로 맞닿는 지점이다. 기획자나 다른 직무 동료의 작업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 같아 조심스러울 수 있겠으나 '팀'이라면 목표가 같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마음이 상할까 전달하지 않는 것이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이다. 유능한 기획자라면 스스로 놓친 지점은 없는지 열린 마음으로 동료의 의견을 들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물론 결정은 리드를 한다) 디자이너이기 때문이 아니라 더 잘하고 싶은 사람, 더 멋진 성과를 내고 싶은 사람이 고민한다. 시키는 대로 하기는 오히려 쉽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진짜겠죠?

공식적으로 PM을 맡게 된 것은 2023년도 1분기였다. 2022년도까지 스스로 철저하게 디자이너로 포지셔닝하고 일했다. 디자인이 그저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여러 경험을 했기 때문에 다른 직무가 가진 전문성을 어설프게 흉내 낸다고 진짜 PM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결정을 내리는 사람, 책임지는 역할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PM 직무가 재밌어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PM은 정말 중요한 역할이었다. 나는 중요한 사람이 되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운이 좋게 PM을 맡을 기회가 생겼다. 적극적으로 프로젝트의 방향성에 대한 의견을 내고, 주변 팀원과 소통했던 것이 빠른 업무 전개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서비스 전체에 좋은 퍼포먼스를 낸 것으로 평가받았다. PM의 채용을 미룰 만큼 대표님이 믿어주었다. 그럼에도 1분기 내내 스스로 PM이라고 한 적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PM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곧 도망갈 마음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디자인을 잘하고 싶었으므로 PM으로 성장하고 싶다

그렇게 PM을 맡고 2주 후부터는 자기 의심을 달고 살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과정이 잘못됐다, 틀린 결론이라는 피드백을 받고 눈물이 차올랐다. 중요한 사람이 아닐 때도 행복했는데 굳이 중요한 사람이 되어야 할 이유가 있나 싶었다. 그럼에도 도망가지 않고 진짜 PM이 되어보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디자인을 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좋은 디자인은 문제를 해결하고 그렇기 때문에 고객의 어려움과 반응이 궁금했다. 데이터와 개발을 더 잘 알고 싶었다. 그러면 무엇이든 나의 디자인 자산으로 남을 것이 확실했다.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제품을 주도해야 한다

어느 날 에어비앤비의 CEO 브라이언 체스키가 PM을 없애버린 이유에 대한 포스팅을 보게 되었다. 얼핏 보면 디자이너가 PM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말하고 싶었던 의미는 넷플릭스 디자인 부사장 Steve Johnson이 짚은 것처럼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제품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제품'을 만들려면 직무를 한정하지 않고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리드를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디자이너의 작업물이 고객이 가장 직접적으로 제품을 만나는 지점이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그에 가장 가까운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의미였다고 생각한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스스로 PM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무게를 그냥 견디는 중이다.

디자이너는 왜 PM이 되는가? 다시 질문할 수 있다. 누가 PM이 되어야 하는가? 고객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제품, 고객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제품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런 사람인가? 맞다. 진짜 PM으로 거듭나기 위해 도망가지 않고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