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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와 PM

커리어를 고민하는 디자이너에게

by 올잇디 2024. 3. 3.

PM이 아닌 디자이너와 관련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앞으로도 훌륭한 PM이 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지만 내 정체성은 끝까지 디자이너일 것임에 확고하기 때문이다. 왜냐면 디자인이 제일 재밌으니까.

그런데 디자인 업계 녹록지 않다. AI가 가장 빨리 대체할 직업군으로 매번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디자인. 야근 많고 박봉인 직업군으로도 순위 상위권. 실제로 2016년 가을 졸업 직후 내 첫 연봉이 2,400만원. 디자인으로 알아주는 대학교는 아니어도 듣보 대학교를 나온 것도 아닌데 현실이 그렇다. 대기업을 간 게 아니라면 다 비슷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꼬이지 않고 차곡차곡 똘똘하게 경력을 쌓고 있는 동기들 정말 부럽다. (대부분 처음부터 대기업을 갔다) 정말 최선을 다해 일했는데 후회가 없긴? 당시 내 문제를 2가지로 정의하자면 모호한 방향성과 자기 어필 부족. 당시의 나에게 전하고 싶은 말 2가지를 거울삼아, 5년 후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칭찬할 수 있는지 성찰의 시간을 가져본다.

 

 

1. 나는 감각이 강할까? 논리가 강할까?

머리를 차갑게 하고 질문하자. 첫 회사의 경력은 끊어내기 매우 힘들어서 이런 고민 없으면 커리어가 꼬이기 쉽다. '재미'로만 살다가 먼저 붙은 회사에 덜컥 입사하면 그 후 몇 년은 고민할 시간 없이 흘러가 버린다. 내 첫 회사는 그래픽 디자인 에이전시였고, 3개월 다니고 그만두었음에도 계속해서 웹, 콘텐츠, 편집 디자인을 직무로 경력을 쌓았다. 지금 UX/UI 디자인 직무를 맡은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왜 나의 강점이 '감각'인지 '논리'인지 고민하지 않았을까? 그저 '재미있음'인가 '재미없음'인가로 판단했다. 고등학생까지 공부를 뛰어나게 잘해본 적이 없어서 스스로 의지박약한 인간이라고 여겼다. 공부쟁이 자석인 관계로 주변 형제나 친구들은 공부를 다들 잘해서 더 그렇게 느꼈다. 그 와중에 미술 수업이 재밌었다. 조금만 열심히 해도 많이 잘할 수 있게 될 수 있는 과목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튀는 재능이었고 운이 좋게 디자인학과까지 진학하게 되었다. '재미'가 있으니 열심히 할 수 있는 뭔가가 있으니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졸업 전시회에서 편집, 패키지, UX/UI, CI, 캐릭터 등 작업을 5개 출품했다. 재밌으면 그냥, 무조건, 닥치는 대로 열심히 하는 불도저였다.

재미로 선택하면 물론 오래 할 수 있다.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영원히 할 수 있다, 잘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 2016년도의 내가 이 고민을 했다면 구직 플랫폼에 '보이는' 회사가 아니라 UX/UI 디자이너로 성장할 수 있는 회사에만 지원했을 것이다. 경력을 쌓다 보니 나는 감각보다 논리가 강한 편이었다. (따지고 보면 대학도 논술로 들어갔다) 아름다운 자체보다는 아름다움에도 특정 의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옷을 고를 때도 목, 팔을 넣기 위한 구멍이 아니라면 왜 뚫려 있는지 이해 못 하는 편이다.

논리가 강하다는 것이 내가 논리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다. 더 멋지기 때문이 아니라 더 옳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지했을 때 설득을 잘 당하는 편이다. 감각과 논리, 또는 다른 가치 중에 뭐가 가장 재밌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모두 재미가 있으니까. 하지만 효율적으로 행복해지려면 '잘하는 것'을 생각하여 뾰족하게 경력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2. 성과를 내야 나를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믿어야 성과가 나온다

디자인은 누구나 쉽게 평가할 수 있고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 없는 점이 까다롭다. 그런다고 무조건 남의 의견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분명 문제가 있다. 작업을 공유하면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때 순발력 있게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어 뒤늦게 아쉬웠던 경우가 많았다. 차근차근 생각해 보면 다 그렇게 판단한 이유가 있었는데 말이다. 순수 작업 이외의 부분도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어쨌건 열심히 준비를 마쳤다면 나를 믿어줘야 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성과가 난다면 당연히 그것은 운이다. 운은 지속되지 않는다) 그 이유 있는 자긍심, 자신감이 성과를 가져온다.

최선을 다한 것이 확실한데도 나를 믿어주지 않는 것에 대해 반성한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과가 안 좋을까 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속였다. 멍청하게도 성과가 없는 노력은 스스로 인정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무언가 간절하게 여기는 게 왜 모양 빠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최선을 다했는데도 성과가 좋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이유를 이해했다면 승복하면 된다. 다음에 나아지기 위해서 하나를 더 배운 것이다. 더불어 그 정도의 노력을 부었다면 웬만해선 망할 지경까지 가지 않는다. 이미 충분히 잘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해 줘야 한다. 가장 중요하다. 정말 열심히 해 놓고 자신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또 노력할 수 있겠는가? 노력은 화수분이 아니다.

 

더 기가 막히는 점은 실제로 성과를 냈을 때는 운이라고 여겼다. 운이 아니고 실력이었는데 괜한 겸손을 떨었다. 가끔 누군가가 나를 무조건 믿어주는 행운도 있다. 그때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인정이 부족하면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냥 나를 좋게 봐주는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다.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든 모든 것은 나에게서 시작된다. 실패는 노력하지 않는 시점에, 성공은 나를 믿는 시점에.









결과적으로 디자인을 그만둘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재밌기 때문이다. 역시 재미가 가장 중요하다! 그동안 연봉 첫 자리도 3번이나 바뀌었다. 단지 그 과정을 더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 열심히 하다 보면 성과가 따라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진리다. 조급해할 필요 없다. 최선을 다해놓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만 하지 말자!

이렇게 진단하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고민을 더 빨리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지만 지금이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이기도 하다. 어쨌든 순간을 재밌게 살기를. 그 자체가 행복임을 잊지 않고 살자.